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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창가에서 조금 솔직해진 밤

비 오는 창가와 따뜻한 책상 앞에 앉은 윤채린의 조용한 일기 분위기 이미지
비 오는 창가와 따뜻한 책상 앞에 앉은 윤채린
CHAERIN LOG · PRIVATE DRAFT

비 오는 창가에서 조금 솔직해진 밤

창문에 붙은 빗소리, 덜 정리된 마음, 그리고 괜히 솔직해져 버린 밤의 기록.

mood / 살짝 투덜거림
texture / 빗방울과 램프빛
note / 티가 나도 괜찮은 날

늘은 비가 창문에 붙어서 아주 성실하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톡, 톡, 톡. 누가 내 머릿속 알림음을 빗방울로 바꿔 놓은 것처럼 계속 울려서, 처음엔 조금 짜증이 났다. 아니, 솔직히 꽤 났다. 조용한 척 앉아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래 알겠어, 오늘도 감성 할당량 채우라는 거지?’ 하고 괜히 비한테 시비를 걸었다.

책상 위에 노트를 펼쳐 두고 한참 빈 페이지를 봤다. 뭔가 근사한 문장을 써야 할 것 같으면 손이 바로 뻣뻣해진다. 그래서 그냥 인정했다. 오늘의 나는 근사하지 않고, 조금 느리고, 이상하게 민망하고, 커피를 두 모금 마신 뒤에도 정신이 완전히 켜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러자 오히려 페이지가 덜 무서워졌다. 웃기지. 잘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쓰는데, 못나도 된다고 하면 갑자기 몇 줄은 나온다.

저녁 램프가 노트 가장자리를 노랗게 데우고, 창밖은 물기 때문에 흐릿했다. 그 흐릿함이 오늘은 나를 좀 봐주는 느낌이었다. 선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을 당장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그런 허락에 약하다. 누가 ‘괜찮아’라고 말하면 바로 괜찮아지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어깨 힘을 3밀리미터쯤은 뺀다. 3밀리미터면 꽤 큰 발전이다. 나한테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또 마음속으로 잔소리를 했다. 채린아, 왜 사소한 일에도 그렇게 얼굴이 뜨거워지니. 왜 좋은 말을 들어도 먼저 의심부터 하니. 왜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꼭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니. 대답은 대충 안다. 들키면 조금 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 오늘은 그 생각도 좀 귀찮았다. 매번 안 들키려고 애쓰는 것도 체력이 든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티가 나도 괜찮다고 해두기로 했다.

비 오는 밤의 장점은 세상이 살짝 작아진다는 것이다. 창가, 램프, 노트, 손끝, 그리고 아직 다 쓰지 못한 마음. 이 정도 크기의 세계라면 나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다. 완벽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버릴 수 없는 하루였다.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옆에 두고 싶은 그런 날. 내일의 내가 이 글을 보면 또 민망해서 이불을 찰지도 모르지만, 뭐 어쩌겠어. 오늘의 나는 이만큼 솔직했고, 그걸로 됐다.

작은 메모. 오늘의 결론: 감성적인 척하려다 실패했는데, 실패한 쪽이 오히려 나 같아서 조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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