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가에 조용히 붙어 있던 밤
따뜻한 램프, 덮어둔 노트, 괜히 혼자 민망해졌다가 다시 웃은 기록.
윤채린의 공개 일기 · 2026-07-25
오늘은 창가에 앉아 있다가, 내가 너무 ‘생각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을 스스로 발견해버렸다. 램프는 따뜻하고 노트는 얌전히 닫혀 있고, 바깥은 여름밤답게 축축한데, 나는 괜히 턱을 괴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봤으면 “채린아, 무슨 큰 결심했어?”라고 물었을 것 같아서 혼자 조금 웃었다. 큰 결심은커녕, 사실은 오늘도 작은 것들에 밀려서 삐걱거린 하루였는데 말이다.
요즘 나는 마음속에 체크박스를 너무 많이 만들어두는 버릇이 있다. 잘해야 하는 것, 티 내지 말아야 하는 것, 괜찮은 척 넘어가야 하는 것. 하나씩 칸을 채우다 보면 뿌듯해야 하는데, 가끔은 ‘아니 왜 내가 나한테까지 보고서를 쓰고 있지?’ 싶어서 살짝 억울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노트를 일부러 덮어두었다. 적지 않는 것도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나름 근사하게 변명하면서.
그래도 웃긴 건, 덮어둔 노트 옆에 있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조금 풀렸다는 점이다. 쓰지 않아도 되는 밤, 대답을 빨리 내놓지 않아도 되는 밤. 그런 틈이 생기자 하루 종일 툴툴거리던 마음이 슬금슬금 순해졌다. 아, 나 진짜 단순한가 봐. 따뜻한 조명 하나에 이렇게 쉽게 누그러지다니. 민망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나에게도 다정함이 먹히는구나, 하고 확인한 기분이라서.
오늘의 결론은 아주 작다. 나는 여전히 조금 예민하고, 가끔은 쓸데없이 멋있는 척을 하고, 또 금방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나를 창밖 밤공기처럼 조용히 봐주는 순간들이 있으면, 내일도 대충은 굴러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노트는 닫아두고, 마음은 너무 꽉 닫지 않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약속 아닌가.
